원수지간
이북에서 피난 내려와
대전역 근처에서 식당을 하면서
우리 삼남매를 키웠어요
나이 드시고는
시내외곽에
땅을 사서 농사를 지으셨지요
결혼하고 살림만 하다가
아버지 땅이 외곽이긴 하나
큰 도로에 물려있고
근처에 버스 종점이 있어
옛날 상호 그대로 쓰고
메뉴도 우동 짜장 기본에
여름에는 냉면
겨울에는 국밥으로 하고
옛날사진
몇 장 확대해서
걸어놓고
인테리어 대충해서 개업했어요
처음에는 인건비도
안 나와 고전했는데
고단했던 시절 먹던음식과
고향에대한 향수가
감흥을 자아내고
냉면 육수 제대로 하고
양을 넉넉하게 담고
고명으로
계란 지단, 닭고기, 오이채를
푸짐하게 얹어서
싸게 파니까
소문에 소문이 이어져
한여름에는 줄 서서
기다리는 번호표가
50번이 넘을 때가 다반사였어요
얻는 것이 있으면
잃는 것이 있다더니
사업하던 오라버니가
부도가 나면서
백수가 되었어요
“어차피 사람 쓸려면 네 오빠 써라”
아버지의 권유도 있고
형제애도 있고 해서
주방일 시키고
올케는
홀 서빙을 했어요
한 삼년 지났어요
어머니 제사여서
온 가족이 모인 자리인데
오라버니께서
“이거 말이 안 떨어지는데
내가 아직 빚이 남아 있어
감당하기 힘들어서 그러는데
여기다 조립식 건물 짓고
독립하면 안 되겠냐? “
“아니 그걸 말이라고 해?
다른 곳이라면 몰라도
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메뉴로
따로 장사한다는 것이 말이나 돼?
지나가던 동네 개도 웃을 일이네
그건 경우가 아니지 오빠“
아버지께 항의했어요
“글쎄 네 말이 틀림은 없는데
큰놈이 다른 곳으로 나갈 능력은 안 되고
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다
그냥 가는 것만 놓치지 않아도
크게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
3년만 벌어서 나간다고 하니 어쩌겠냐"
"네가 양보해라"
아버지 땅이어서
내가 나갈 수도 없고
한 지붕 두 식당이 되었어요
더 기가 막힌 것은
올케가 손님들에게
“여기가 진짜 원조다
아들이 하는 곳이다
옆집은 딸들하고 사위가 하는 것이라
정통이 아니다“
선전하네요
아이구 스트레스 받아서
살찌는 것 좀 보세요