부자 사전
서대전역 맞은편에서
반짝 시장이 설 때니까
아파트 들어서기 전부터
자전거에 비닐봉투 싣고 다니며
장사를 시작했어요
부지런하고
성실하고 안 쓰는 것으로
조금씩 돈을 모았지요
트럭 장만하고
공장에 가서
현금 주고 사다
싸게 파니까
단골도 생기고
도매도 조금씩하고 하니까
힘들어서 그렇지
월급쟁이 부럽지 않았어요
버는 족족 은행에 넣었는데
그 때만해도 이자 붙는
재미가 쏠쏠했지요
아파트 보급되면서
투기가 시작될 때였는데
행상하는 게 춥고
비 올 때는 너무 힘들어서
내 가게에서 앉아서
장사하는 게 목표였거든요
아파트상가
분양 광고를 보고
"이거다"
결정했어요
1층보다 지하에 넓게
잡는 것이 유리할 것 같아
무리 해서 출입구 쪽으로
30평을 계약했어요
희망이 생겨서
춥고 배고픈 것도 모르고
악착같이 허리띠를 졸라 맸죠
오픈할 때
처가식구들 다 부르고
계원들도 초대해서
돼지머리랑 시루떡 놓고
고사 지냈어요
기분 참 좋데요
슈퍼 들어오고 부동산, 잡화점에 빵집, 문구점
인테리어, 도배장판, 분식에 미장원, 학원이 입점하고
입주 시기에 맞물려 거반거반 차는가 싶더니
한 일년 지나 하나 둘
빠져 나가더니
세는 비싸고 장사들이
시원찮으니까
1층 몇 개 남고 지하는 저만 남았어요
형광등은 켜 놓아야하니까
공동관리비며 시설 유지비가
어마어마하게 나오데요
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
애간장 태우다
셔터 내리고
창고로 쓰고 있는데
분양가의 반에 반값에라도
팔렸으면 좋겠어요
아파트 산 사람들은 지금
두 배도 넘게 올랐는데
점포장만했다고
좋아라 했는데
헛고생했어요
"부자는 팔자를 타고 난다"는데
어쩌겠어요
더 열심히 해서
종자돈을 모아봐야지요
오류동에서 둔산으로
노은에서 도안동으로 갈아타면서
부자 된 사람도 많다던데